“이 불꽃, 괜찮을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방 안은 노트북 화면 하나만 빛나고, 나는 스웨터를 반쯤 걸친 채 서 있었다.
나는 20살, 그는 54살. 그 차이가 바닥에서 손끝까지 쭉 타고 올라온다.
그는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차가워. 내 손 좀 봐.”
손등이 내 팔 안쪽을 스쳤다. 피부가 얼어붙었다가, 불이 붙는다. 뜨겁다. 그 온도가 단순한 체온을 넘어선다는 걸, 나는 알았다. 그러나 말을 끊지 못했다. 그만큼 믿음직한 손길은 처음이었다.
숨겨진 계산
내가 원한 건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경험이 주는 절대 안전감이었을까.
나는 그가 가진 모든 게 낯설면서도 아주 익숙했다. 회의실에서의 결재 서명, 잘 다림된 와이셔츠, 뉘앙스 있는 침묵. 그 모든 게 내가 가진 불안정함과 정반대였다. 그의 손길은 단지 몸을 더듬는 게 아니었다.
‘이 사람은 나를 망칠 수 있어. 그래서 더 끌려.’
그 대목에서 욕망은 두 갈래로 갈랐다. 하나는 ‘나를 지켜달라’는 맹목적 기대, 다른 하나는 ‘나를 망쳐달라’는 자기파괴 충동이었다.
수현의 일기, 3월 9일
오늘도 교수님 연구실에 갔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나는 노크만 하고 들어갔다. 서가에 선 책들이 낡은 냄새를 뿜었다.
“자료 찾느라 늦었네.”
그는 나를 바라보다가 먼저 눈을 피했다. 그래도 책상 위에 손을 올려뒀다. 원고지 사이로 낀 붉은 펜 자국이 나의 뺨처럼 보였다.
“여기, 틀린 부분이야.”
손끝이 제자리를 가리키며 살짝 머물렀다. 그 사이, 나는 3초 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그 순간에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그는 나를 버릴 수 있고, 나는 떠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동의했다. 그 손길 하나에.
민재는 다르게 끝났다
민재는 예술 아카데미를 다니던 스물두 살이었다. 그가 만난 건 54세 화랑 대표였다. 첫 전시 오프닝에서 그에게 와인을 따르며 말했다.
“색감이 좋네요. 누가 가르쳐 주셨어요?”
대표는 대답 대신 민재의 손등을 두 번 톡톡 두드렸다. 바로 그때, 민재는 체온보다 더 뜨거운 무언가를 느꼈다.
한 달 뒤, 민재는 대표 집 지하 작업실에서 눈을 감았다. 건반 위로 내려앉은 손길은 전혀 서투르지 않았다. 대신 정확했다. 민재는 “도망치고 싶었다” 고 말했다. 그러나 그 금기의 끝에선 파국이 아니라 구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는 그를 파리로 유학 보냈다. 숙제였다. 대신,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민재는 지금도 그 문장을 떠올린다.
“내가 너를 해치려 했던 건 아니야. 네가 나를 해치도록 두려고 했던 거지.”
왜 우리는 더 뜨거운 손길을 찾는가
20대는 갈피를 잡지 못한다. 나이 든 이의 손은 이미 굳어진 길 위를 걷는다. 그 길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느낀다.
- 안전: 그는 이미 다 겪었다. 나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 위험: 그는 나를 끝까지 아프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을 만큼 나는 갈망한다.
그 사이에는 권력이 흐른다. 그가 가진 자본, 명함, 지위는 나에게 향하지만 동시에 나를 작게 만들 수도 있다. 그 갈등 자체가 신경을 환히 태운다.
우리는 사랑이 아니라 권력의 온도에 반응한다.
남은 한기
나는 여전히 그의 집 앞을 지나친다. 문 앞에 놓인 신발 한 켤레가 나를 멈추게 한다. 그는 아직도 같은 온도로 살아 있을까. 혹은 그 뜨거움이 식어서, 나와 비슷해졌을까.
나는 모른다. 다만, 한 가지만 확실하다. 20살의 내 몸은 그의 손길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당신도, 당신의 손끝에서 뜨거운 무언가를 찾고 있지는 않은가.
질문은 아직 남아있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손길이 뜨거운지 아는가, 아니면 그 뜨거움을 버릴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