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녀가 301호 앞에 선 밤, 우리는 서로를 향한 끝내지 못한 이별을 숨쉬었다

전 애인이 이웃집으로 이사 오던 밤, 우리는 끝내지 못한 이별의 온도를 다시 숨쉬었다. 문 앞에서 마주친 그림자, 아직도 차가운 반지, 그리고 식지 않는 떡볶이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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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문 앞에 섰다. 손에 든 이삿짐 상자 위로 흰 왼손이 보였다. 새까만 매니큐어는 내가 마지막으로 본 그 색.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남겨진 반지처럼, 아직도 빛을 잃지 않았다. 복도의 할로겐등이 하나하나 꺼지며 우리 사이의 그림자가 늘어났다.

작년 12월, 눈발이 차창에 부딪히던 밤. 그녀는 내게 말했지.

"이제 끝내자."

나는 대답 대신 침을 삼켰다. 그날 밤 우리는 서로의 숫소리에 날카로운 무언가를 품었다. 끝내 쓰러진 건 사랑이었고, 살아남은 건 이별의 실패였다.


그날 이후, 나는 두 갈래의 시간 속에 산다. 하나는 그녀를 끝내려 했던 시간. 다른 하나는 그녀를 놓치지 못한 시간.


이웃주차장에 붉은 모닝콜이 멈췄다. 문이 닫히는 소리, 트렁크가 열리는 소리, 유리병이 부딪히는 소리. 네 발짝. 그만큼이면 내 심장이 들릴 거리.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거리.

"이사 왔나 봐."

그녀가 말했다. 복도 불빛 아래에서 우리의 그림자가 두 갈래로 갈랐다. 한쪽은 아직도 그녀를 원하는 나, 다른 한쪽은 그녀를 놓치지 못한 나.

문 앞에서 우리는 침묵의 끝에 섰다.

"배달 왔는데... 아, 여기 아닌가요?"

분식집 종이가방를 든 그녀. 떡볶이 냄새가 복도를 가득 채운다. 그녀는 아직도 떡을 식혀 먹지 못한다. 우리가 함께 먹던 방식 그대로.

"네 집이 302였잖아. 301은..."

잠시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에 작은 지진이 일었다. 작년 12월, 내가 그녀를 찾아갔을 때의 표정과 똑같다.

"아, 그래. 이웃이네."

그녀는 문을 닫았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시 마주쳤다. 7초, 문이 닫히는 데 걸리는 시간.

"아직도 그거 가지고 있어?"

"뭐를?"

"내가 준 반지."

나는 모른 척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내가 아직도 그 반지를 열쇠고리에 걸고 다닌다는 걸. 열쇠 한 자루와 반지 하나. 문을 열 때마다 금속이 금속을 스친다.


옆집에 사는 승우가 찾아왔다. 대학원 동아리 후배였다. 그는 어젯밤 CCTV를 뒤져서 발견했다.

"2시 47분. 윤아 씨가 우리 집 현관문 앞에 섰어. 3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서 있었어."

화면 속 그녀. 손에는 무언가를 쥐고 있다. 작고 납작한 것. 어쩌면 그녀도 나를 끝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녀도 나를 끝내지 못한 자신을 끝내고 싶었던 걸까.


사랑은 상대를 완전히 소유하려는 욕망이다. 그 욕망이 극단으로 가면 소유의 최종 형태인 '소멸'로 변한다.


전처가 이웃집에 온 것은 사랑의 유령이 복귀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서로를 끝내고 싶었던 순간의 온도를 잊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순간만이 우리가 서로에게 진짜로 중요했던 시간이니까.

지금도 나는 그녀가 문 앞에 서 있을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동시에 기다린다. 문고리에 걸린 반지를 만지며.

어쩌면 내가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건, 그녀가 다시 문을 두드릴까 봐가 아니다. 그녀가 다신 오지 않을까 봐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툭, 툭. 두 번.

나는 열쇠를 꺼내 문고리에서 반지를 떼어낸다. 금속이 차가워질 때까지 손에 쥐고 문을 연다. 복도는 비어 있다. 대신 바닥에 분식집 종이가방 하나가 놓여 있다. 떡볶이 냄새가 문틈으로 스며든다.

가방 위에 붙은 메모지.

잘못 배달된 거 같아요. 302호

나는 가방을 들어 302호 앞에 놓는다.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이삿짐 상자가 아직도 복도 한쪽에 놓여 있다.

그녀가 아직도 떡을 식혀 먹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끝내고 싶었던 밤을 기억한다. 날카로운 숨결에 서로의 끝이 맺혔던 순간을.


문을 닫고 나면, 복도는 다시 조용해진다. 떡볶이 냄새와 함께, 살아남은 사랑의 잔해가 서서히 식어간다.

나는 아직도 그 반지를 열쇠고리에 걸고 다닌다. 문을 열 때마다 금속이 금속을 스친다. 그 소리가 아직도 우리의 끝내지 못한 이별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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