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생일날 받은 12초 영상: 죽음을 약속한 입술이 내 귓가를 간질이던 순간

247일째 ‘죽을 거야’라 말하는 친구가 보낸 영상 한 편. 그 찰나의 숨소리가 나를 해방과 타락의 끝자락으로 끌어당겼다.

17금생일죽음영상관계
생일날 받은 12초 영상: 죽음을 약속한 입술이 내 귓가를 간질이던 순간

밤 11시 47분, 희진이 보낸 영상이 카카오톡 대화방을 번쩍였다.

열람 중… 12초

화면은 흔들렸다. 누런 천장 조명 아래, 희진의 목끝이 잠깐 드러났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살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오늘 너 안 오면… 진짜 죽을게.”

숨소리가 낮게 파고들자, 손에 들린 케이크 조각이 떨어졌다. 생크림이 양탄자 위로 퍼지며 생일 초 하나가 지직 소리를 내며 꺼졌다. 연기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 순간, 247일째 이어진 위협 중 가장 선명한 맛이 혀끝을 지났다.


처음엔 장난이라 믿었다.

“나 오늘 진짜 죽을 뻔했어.”

8개월 전 새벽 2시, 마포역 2번 출구 뒷골목 ‘술이나’에서 희진이 웃으며 내민 말이었다. 나는 그때만 해도 달려갔다—초라한 맥주잔을 쥔 채, 어깨에 걸터앉은 희진을.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입술 끝으로 내 귓불을 스쳤다.

“장난이야. 근데 니가 와서 좋다.”

그때까진 몰랐다. 이게 첫 문장이고 나는 이미 다음 페이지로 넘겨진 종이 인형이란 걸. 누런 네온 아래 희진은 내 손등을 쓸며 속삭였다.

“너 없이는 못 살 것 같아.”


247일 동안 희진이 남긴 흔적은 단순한 숫자로 정리됐다. 메시지 1,834개, 그중 1,247개는 ‘죽을 거야’. 위협 사진 89장, 영상 34편, 목에 건 끈 실제 길이 27 cm. 손목 위 면도날 두께 0.1 mm. 모두 갤러리 ‘생명줄’ 폴더에 담겨 있다. 나는 그 폴더를 열 때마다 손끝이 저렸다.

희진은 내 하루를 꿰뚫고 있었다. 출근 시간, 지하철 2호선→9호선 환승, 화장실 가는 횟수까지. 내가 서울 모빌리티 회의실에 들어가면, 희진도 집 불을 끄고 침대에 눕는다. 문자가 오면 목 뒤에서 숨이 느껴질 정도였다.

“회의 끝났지? 나 아직 살아있어.”

답장이 10분만 늦으면 5초 분량 영상이 날아온다. 이마에 맺힌 방울만 확대된 채. 나는 그 영상을 0.25배속으로 돌려봤다. 희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릴 때마다 내 숨이 멎는 듯했다.


나는 매일 밤 꿈을 꾼다. 희진이 목을 조르는 꿈. 손목을 그었을 때 흘러내리는 붉은 실타래. 그리고 나는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가슴이 홀쭉해진다. 드디어 끝났구나. 아침에 눈을 뜨면 끝나지 않은 현실이 서늘하다. 희진이 보낸 새벽 4시 메시지가 기다린다.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마지막 선물 줄게. 직접 가져가.”


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11초 58프레임, 12초 00프레임—정지화면엔 희진의 입술만 남았다. 붉게 젖은 틈으로 숨소리가 스며든다. 케이크 조각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 손에 든 포크가 무겁다. 초 하나가 꺼지는 순간, 나는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0.25배속. 희진의 살결 위로 잔물결이 일렁일 때, 나는 숨을 멈췄다. 죽음을 약속하는 숨소리가 내 해방의 시작이라는 걸 깨닫는 찰나였다.


생일 케이크는 아직도 식탁 위에 있다. 초는 꺼졌지만 초코 시트는 흘러내리지 않는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희진에게 답장을 쓴다.

몇 시에 만날까.

보내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죽음이 아니라 타락이 다가오는 느낌. 희진의 목덜미가 떠오르고, 그 위에 내 손이 올려질 듯한 음습한 해방감. 나는 지금 그 해방의 문을 밀어 열고 있다.

← 목록으로